coram deo
by Dre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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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0

1번.
[누군가를 그리지도, 누군가를 기다리지도 않고서, 지금 이 순간, 온전한 나로 하늘 밑 땅위에 서 있다는 것.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으로서 완전히 살고 있는 오늘 같은 날이 내 삶에서 몇 번이나 될까.
생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지 알 수 없다.
간만에 홀가분해진 나는 어디든 가게되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쩐일인지 오늘은 평안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불안함이 나를 엄습하기 전에, 얼른 이렇게 생각해버렸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분명한 목적과 정당한 이유가 나를 이끌어주는대로, 전진하기도 하고 멈추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언제나 불안함이 동행한다는 것도 익숙한 현실이다.

사람들은 사랑이 이끄는대로 산다.
누군가는 음악을 사랑해서 그것으로 세상을 듣고, 누군가는 부나 명예를 사랑해서 그것에게 모든 것을 걸어버린다. 누군가는 사람을 사랑해서, 그를 따라간다.
사랑이 이끄는대로, 자기를 버리고 무엇인가를 좇아가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실체는 사라졌거나, 막다른 골목이거나, 상황이 변하거나, 배신의 쓴잔을 마셔야 하기도 한다.
혹은, 자기 자신이 변해버릴 수도 있다.
한 순간에 길을 잃고 오리무중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럴때마다, 다시 궤도에 진입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하지만 나는 매번, 내 생을 던져주어도 좋을, 아깝거나 고통스럽지 않을, 그런 대상을 찾기위해 내달렸다.
도중에 여러번, 발을 헛디디긴 했지만, 몇 번의 실패와 반복적인 깨달음 끝에, 마침내 나는 찾았다.
훗날 행복해지려고 끊임없이 오늘의 현실을 불행하게 여기는 것을 멈추고,
지금까지 동일하게 나를 지탱해주었던 유일한 본질과, 다시 한 번, 깊이 연합하려고 한다.
참을 성 부족한 나는, 언젠가 또 제멋대로 튕겨 나가려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진폭이 조금씩 잦아 들길 바란다.

아픔도, 눈물도 없는 그 곳은, 지금 여기에서도 충분히 다다를 수 있다.


you may all  stay in peace.]



9월에 쓴 거네.



2번.
그래, 그런데 말이야, 나는 이따금 또 불안해진다.

우리의 마음은 불안하다.
우리는 당신 안에서 쉬기 전 까지 불안하다.



3번.
믿음은 통찰을 필요로 한다.
이성은 믿음에 종속된 것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결론을 거부하는 입장과는 통할 수 없는 논의겠지만
믿음이 전제된 통찰이 인간에게 필요하다.
그 믿음 안에 파악되는 참을 사유를 통해 익히는 것, 그것이 필요한 이유는, 쉬기 위해서이다.

파스칼은, 생각하기의 모든 영역에서 실패한 인간은 결국에 신을 찾게 된다고 했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장소는 이성이 아니라 심정임을 인정하게 된다.

인간 본질의 삼중구조는 기억과 의지와 통찰이라는데,
우리의 모든 통찰은 우리 안에서 참도, 구원도 찾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데까지만 도달케 한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 즉, 자신이 모른다는 것과 불안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인간의 일이다.
모름을 알고, 약함을 느낀자는 심정의 확실성에 도달하고
많은 길을 돌아 원점으로 가게 되며, 신 앞에 홀로 서게 되는 것이다.



4번.
"무엇인가 인간에게 참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인간이 완전한 정열을 갖고 자신의 개인적 참으로 파악하느냐에 달렸다.
실존을 건드리지 않고 실존을 변화시키지 않는 참은 의미가 없다."



5번.
그러고 보면, 나는 아직 흥미와 기분을 좇아 책임 없이 즐기며 살기 때문에 미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막연히 가능성의 풍부함을 즐기지 못하고 있으며, 공허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에
어쩌면
윤리적 단계로 넘어가려는 찰나에 도달하려는지도 모르겠다.



6번.
나의 반석이신, 당신.



7번.
그리고 본향.

by Dreamer | 2009/12/20 23:22 | Me, Myself and I | 트랙백 | 덧글(0)
2009.12.6.

1번.

생각해보니, 어제 첫 눈 왔었다.
잠깐동안이었지만, 함박눈이었다.

같이 있던 사람들, 이야기를 잠깐 멈추고 다 같이 멍하게 창밖을 봤다.

짧은 정적 뒤에, 모두가 입을 모아 한 말.
눈이 오고 난 뒤는 싫어.

한창일때는 예쁘고 신나고 설레는데, 그 후엔 지저분해지고 불편하고 추고 미끌미끌하고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어져.
그래서 싫어.


응, 이래저래 비슷한 이유로, 별로야.




2번.
그리고 그리고 또, 어제,
밤에 피드백하면서 누군가 통기타를 쳤는데, 내 입에서 노래가 흥얼흥얼 나왔다.

그리고 아주 잠깐, 일년 전 가을쯤, 그 바닷가에서, 언플러그드 일렉(?) 퉁기는 소리에 맞춰 노래 부르던 것이 생각났다.
해도 지고 있었고, 날씨도 좋았고, 바다였고, 그리고, 그때까지는 모든 것이 행복하고 감사했었지.


오늘 밤도 길게 보내고, 글쓰고 커피 마시고 글쓰고 커피 마시고 그러겠네.

그래, 그러니까, 잠들지 말고 나랑 같이 좀 깨어 있어줘.

by Dreamer | 2009/12/06 19:00 | Me, Myself and I | 트랙백 | 덧글(0)
2009.11.23.
출처: 한국교육학회 뉴스레터 260호(2009.9)

제목: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학자들을 위하여

이화여대 오욱환

인생은 너무나 많은 우연들이 필연적인 조건으로 작용함으로써 다양해집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전공분야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길로 접어든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을 겁니다. 전공이 같았던 동년배 학우들이 각기 다른 진로를 선택함으로써 흩어진 경험도 했을 겁니다. 같은 전공으로 함께 대학원에 진학했는데도 전공 내 하위영역에 따라, 그리고 지도교수의 성향과 영향력에 따라 상당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겁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저는 한국교육학회나 분과학회에 정회원으로 또는 준회원으로 가입한 젊은 학자들에게 학자로서의 삶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며 몇가지 조언을 하고자 합니다. 이 조언은 철칙도 아니고 금언도 아닙니다. 학자로서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노하우라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읽기를 바랍니다. 이 조언은 제가 젊었을 때 듣고 싶었던 것들입니다. 젊은 교육학도였을 때, 저는 이러한 유형의 안내를 받지 못했습니다.

직업에 따라 상당히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직업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결정적이기 때문에, 저는 직업을 생업(生業)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학문은 권력이나 재력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학자로서의 성공은 학문적 업적으로만 판가름됩니다. 자신의 직업을 중시한다면, 그 직업을 소득원으로써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치로 받아들여야 맞습니다. 아래에 나열된 조언들은 제가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조언들은 제 자신에게도 적용됩니다.

•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면, 그에 걸맞은 일자리는 있다”고 확신하십시오.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은 구직난을 호소하지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구인난으로 애를 태웁니다. 신임교수채용에 응모한 학자들은 채용과정의 까다로움과 편견을 비판합니다만, 공채심사위원들은 적합한 인물을 찾지 못해 안타까워합니다. 공정한 선발 과정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공정하게 진행되기를 기원하면서 요구한 조건을 충분히 갖추는 데에 더 힘쓰십시오.

• 학문에 몰입하는 학자들을 가까이 하십시오. 젊은 학자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모형이 되어줄 스승, 선배, 동료, 후배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때에는 따라해 보는 방법이 효율적입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스타일을 갖추면 됩니다. 학문에의 오리엔테이션을 누구로부터 받느냐에 따라 학자의 유형이 상당히 좌우됩니다.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면, 반드시 학문에 혼신을 다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존경할 수 없는 학자들을 직면했을 경우에는, 부정적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다시 말해서, 그 사람들과 다르기 위해 노력하면 정도(正道)로 갈 수 있습니다.

• 시․공간적으로 멀리 있는 위대한 학자보다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은, 그렇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모형으로 삼으십시오. 의식을 해야만 인식되는 사람은 일상적인 모형이 될 수 없습니다. 수시로 접하고 피할 수 없는 주변의 학자들 가운데에서 모형을 찾아야 합니다. 그 모형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될 때에는, 여러분이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그 때, 눈을 들어 조금 더 멀리 있는 모형 학자들을 찾으십시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분이 훌륭한 학자에 가까워집니다.

• 아직 학문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가능한 조속히 결정해야 합니다.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곧바로 이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학문은 적당히 해서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택하지 않은 일에 매진할 리 없고, 매진하지 않는 일이 성공할 리 없습니다. 학계에서의 업적은 창조의 결과입니다. 적당히 공부하는 것은 게으름을 연습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게으른 학자는 학문적으로 성공할 수 없으며, 학계는 지적 업적을 촉구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도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 읽고 쓰는 일보다 더 오래 할 수 있고 더 즐거운 일을 가진 사람은 학문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읽었는데도 이해되지 않아서 속이 상하고 글쓰기로 피를 말리는 사태는 학자들에게 예사로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읽고 씁니다. 이 일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일은 어렵고 힘들수록 더 가치 있고 즐거울 수 있습니다. 읽고 쓰는 일을 피하려고 하면서도 그 일에 다가간다면, 학자로서 적합합니다.

• 학문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부족하다면, 대인관계를 줄여야 합니다. 학문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학문에 투입하는 시간은 다른 업무에 할당하는 시간과 영합(zero sum)관계에 있습니다. 학문을 위한 시간을 늘리려면 반드시 다른 일들을 줄여야 합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대인관계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개인 전화번호부가 보험설계사의 전화번호부처럼 다양하고 많은 인명들로 채워져 있다면, 학문하는 시간을 늘릴 수 없습니다. 물론 대인관계도 사회생활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학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학문을 직업으로 선택하면 불행해집니다.

• 학문 외적 업무에 동원될 때에는 맡겨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에 헌신하지는 마십시오. 젊은 학자들은 어디에서 근무하든 여러 가지 업무―흔히 잡무로 불리는 일―에 동원됩니다. 선택할 수 있을 때에는 이러한 일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는 선택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마련입니다. 그 일을 부탁한 사람들은 젊은 학자들보다 직위가 높고 영향력이 더 큽니다. 그리고 그들은 젊은 학자들이 일하는 자세를 눈여겨봅니다. 잡무를 부탁하는 사람들은 젊은 학자들에게 평생 직업을 제공하거나 추천하거나 소개하는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기 싫지만 피할 수 없을 때에는 성실해야 합니다.

• 시작하는 절차를 생략하십시오. 논문을 쓸 때 가장 힘든 시기는 시작할 때입니다. 시작하지 않으면, 결과가 나올 리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하면 될 일을 시작하는 절차에 구태여 의미를 부여하고 길일(吉日)이나 적일(的日)을 찾다가 실기(失機)합니다. 신학기에, 방학과 함께, 이 과제가 끝나면 시작하려니까 당연히 신학기까지, 방학할 때까지, 과제가 끝날 때까지 미루게 되고 정작 그 때가 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새로운 변명꺼리를 만들어 미루게 됩니다. “게으른 사람은 재치 있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가 더 지혜롭다고 생각한”답니다(성경 잠언 27:16). 논문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즉시 그리고 거침없이 많이 기록해두어야 합니다. 적기를 기다리다가는 아이디어를 놓칩니다. 사라진 아이디어는 천금을 주어도 되찾을 수 없습니다.

• 표절은 학자에게 치명적인 오명이 됩니다. 표절은 의식적으로도 그리고 무의식적으로도 일어납니다. 표절에의 유혹은 게으름과 안일함에서 시작됩니다. 표절을 알고 할 때에는 자신에게 관대하고 유리한 변명이 충분히 만들어집니다. 표절하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엄격해야 합니다. 모르고 표절할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발표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글쓰기에 엄격한 사람들을 가까이 해야 하고 정중하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발표된 후에 표절로 밝혀지면, 감당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 시간과 돈을 어디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도서구입에 인색하고 음주나 명품구매에 거침없다면 학자로서 문제가 있습니다. 읽을 책이 없으면 읽어야 할 이유까지도 사라집니다. 책을 구입하고 자료를 복사하는 데 주저하지 마십시오.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면 구입해야 합니다. 꼭 필요한지를 따지는 것은 책을 사지 않으려는 이유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 문헌들을 읽거나 가까이 두고 보아야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됩니다.

• 새 책을 구입했을 때나 새 논문을 복사했을 때에는 즉시 첫 장을 읽어두십시오. 그러면 책과 논문이 생경스럽지 않게 됩니다. 다음에 읽을 때에는, 시작하는 기분이 적게 들어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구입한 책과 복사한 논문을 도서관 자료처럼 대하지 마십시오. 읽은 부분에 흔적을 많이 남겨두십시오.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반론이 생각나면, 그 쪽의 여백에 적어두십시오. 그것이 저자와의 토론입니다. 그 토론은 자신이 쓸 글의 쏘시개가 됩니다.

• 학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십시오. 학회의 주체로서 활동하고 손님처럼 처신하지 마십시오. 학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긍정적 모형들과 부정적 모형들을 많이 접해보십시오. 좋은 발표들로 모범 사례들을 만들어가고 실망스러운 발표들을 들을 때에는 그 이유들을 분석해보십시오. 학회에 가면 학문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학회에 가면 필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감성적 자극도 받을 수 있습니다.

• 지도교수나 선배가 여러분의 인생을 결정해주지 않음을 명심하십시오. 학위논문을 작성할 때 지도교수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배의 조언은 학위논문을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도와 도움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그들에게 종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홀로서기가 시련이듯이, 학자로서의 독립도 어렵습니다. 은사나 선배에의 종속은 그들의 요구 때문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젊은 학자들이 스스로 안주하려는 자세 때문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 걸작(傑作)이나 대작(大作)보다 습작(習作)에 충실하십시오. 논문을 쓰지 못하는 학자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걸작에 대한 집착입니다. 이들은 다른 학자들의 논문들을 시시하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찮게 평가한 논문들과 비슷한 수준의 논문을 쓰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논문을 쓰는 데 엄청난 압박을 느낍니다. 걸작에 대한 소망은 학자로서 당연히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걸작은 쉽게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걸작을 지향한 논문이라고 해서 걸작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논문을 쓸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그 논문들이 쌓여지면서 걸작과 대작이 가능해질 뿐입니다.

• 학자의 길을 선택한 후에는 곧바로 연구업적에 대한 압박이 시작됩니다. 교수직을 구하려면 반드시 연구업적을 충분히 갖추어야 합니다. 많은 대학에서 연구보고서는 연구업적으로 평가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저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번역서에 대한 평가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낮습니다. 번역보다 창작에 몰두하십시오. 번역은 손쉬워 보이지만 아주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생색도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역했을 경우에는 지적 능력을 크게 의심받습니다.

• 학자가 되고 난 후에는 저서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압박도 만만치 않습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러 책을 찾을 때 다른 학자들이 쓴 책들만 보이면 상당히 우울해집니다. 여기에 더하여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동료들이 교과서와 전공서를 출판할 때에는 뒤처지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학자들이 젊었을 때부터 교과서 집필을 서두릅니다. 교과서 집필은 생각과는 다르게 아주 어렵습니다. 교과서에 담길 내용은 대부분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쓸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논문과는 다르게, 교과서 집필은 다른 학자들도 알고 있는 내용들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이어서 표절의 가능성도 아주 높고, 오류가 있을 경우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학자로서 최소 10년은 지난 후에 교과서 집필을 고려하십시오.

• 학회에 투고한 논문이 게재되지 않더라도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학회에서 발행되는 정기학술지에의 게재 가능성은 50퍼센트 수준입니다. 까다로운 학술지의 탈락률은 60퍼센트를 넘습니다. 그리고 학계의 초보인 여러분이 중견․원로 학자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할 리도 없지 않습니까? 아이디어를 짜내어 논문을 작성한 후 발송했더니 투고양식에 맞지 않는다고 퇴짜를 맞거나,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고 게재불가 판정을 한 심사평을 받을 수도 있으며, 최신 문헌과 자료를 사용했는데 이에 대해 문외한인 심사자를 만나 거부될 수도 있습니다. 게재불가를 받은 자신의 논문보다 훨씬 못한 논문들이 게재되는 난감한 경우도 겪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문을 투고해야 합니다. 학회에 투고하기 전에 학회 편집위원회보다 더 까다로운 사람들로부터 예비 심사를 받기를 권합니다.

• 학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학문 활동을 쉽게 생각합니다. “앉아서 책만 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문은 소일거리처럼 책만 보는 일이 아닙니다. 논문작성은 피를 말리는 작업입니다. 이 일을 오랫동안 해 온 저도 논문을 작성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논문은 다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글이 아닙니다. 인문사회계에는 깜짝 놀랄 일이 많지 않습니다. 논문의 주제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에서 찾아야 합니다. 논문은 새로운 것을 밝히는 작업이라는 점에 집착함으로써 낯선 분야에서 주제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 논문을 쓰려면 책상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논문의 아이디어는 직감(hunch)에서 나올지 몰라도 논문 글쓰기는 분명히 인내를 요구하는 노역입니다. 책상에 붙어 있으려면 책상에 소일거리를 준비해 두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십시오. 컴퓨터는 최상의 제품을 구비하십시오. 프린터는 빨리 인쇄되는 제품을 구비하고 자주 인쇄하십시오. 퇴고는 반드시 모니터보다는 인쇄물로 하십시오. 퇴고할 때에는 다른 사람의 논문을 심사하듯 비판적으로 살펴보십시오. 논문의 초고를 작성했을 때쯤이면 내용을 거의 외우게 됩니다. 그래서 오류를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아무리 세심하게 작성하더라도 초고에는 오류가 아주 많습니다. 이 오류들을 잡아내려면 그 논문을 남의 논문처럼 따져가며 읽어야 합니다. 앞에서부터도 읽고, 뒤에서부터도 읽어야 하며, 중간부터도 읽어야 할 뿐만 아니라 오래 묵혔다가 다시 읽어보기도 해야 합니다. 자신이 쓴 글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방법은 모두 동원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유는 학회에 투고했을 때 심사위원들이 남의 글을 비판하듯 읽기 때문입니다. 논문심사자들은 심사대상 논문에 대해 호의적이 아닙니다. 이들은 익명이기 때문에 객관적이며 탈락률을 높여달라는 요구를 받을 때에는 아주 냉정해집니다.

• 학자의 길을 선택한 후에는 반드시 지적 업적을 갖추어야 합니다. 연구업적이 부족하면, 학계에서 설 땅이 별로 없습니다. 부족한 연구업적을 다른 것들로 보완하는 일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떳떳하지도 않습니다. 쫓기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우울해집니다. 자신의 전공영역에서 발간되는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들을 체계적으로 점검하고 관심이 끌리는 논문들은 복사하여 가까운 데 두십시오. 그 논문들을 끈기 있게 파고들면, 여러분이 써야 할 글의 주제와 소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젊은 교육학자들이 학자로서의 일상을 즐거워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 가지 학술모임에서 이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들의 즐거움과 행복으로 한국의 교육학이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 필자 :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 석사, University of Illinois
by Dreamer | 2009/11/23 23:06 | Me, Myself and I | 트랙백 | 덧글(2)
2009.11.10.

1번.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다 알아요. 그대의 두려움을.


2번.
나를 죽이는 것은, 내 안의 권태와 나태이다.


3번.
어떤 때는 말이 모자라, 이 가슴 속엣 것을 표현해내지 못하고 만다.
이 불꽃이 때로는, 미미한 온기로, 어렴풋한 빛으로 약해지기도 하지만.
꺼지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지켜내는 자가 되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나는 아직 그 불씨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란이 잠잠해지면, 주변의 산소를 빨아들여, 다시 활활 타오를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길.


4번.
의문의 과제를 끝내고, 허탈한 마음을 추스리려, 다음 과제를 위해 '새문서 1'을 열었다.
완벽히, 새로운 시작이다. 젠장.
1분 전의 해방감은 온데간데 없다.


5번.
창문 틈 사이로 꽤 찬 바람이 기어들어오길래, 문을 열어보니, 비가 오고 있다.
낮에 '생각보다 춥지 않은데?', 아무리 그래봤자. 
새벽마다 이렇게 조금씩, 겨울이 오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노릇.



 

 




 

by Dreamer | 2009/11/10 02:25 | Me, Myself and I | 트랙백 | 덧글(0)
2009.11.2.


When the day
of Pentecost came, they were all together in one place.

Suddenly a sound like the blowing of a violent wind came from heavenand filled the whole house where they were sitting.

They saw what seemed to be tongues of fire that separated and came to rest on each of them.

All of them wer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and began to speak in other tongues as the Spirit enabled them.

[Act 2:1-4]

 

by Dreamer | 2009/11/02 10:33 | Me, Myself and I | 트랙백 | 덧글(0)
2009.10.31.

사람 만나는 일, 어려워진다, 갈수록.


by Dreamer | 2009/10/31 23:29 | Me, Myself and I | 트랙백 | 덧글(0)
2009.10.16.

1번.
꿈의 잉태.
지속적인 꿈의 추구.
꿈의 실현.



2번.
그나저나, 간밤엔 매우 흡족한 꿈을 꾸었다.
하루종일 기분이 달달하구나.


3번.
Who is this that appears like the dawn,
fair as the moon
bright as the sun,
majestic as the stars in procession?

[Song of Songs 6:10]

by Dreamer | 2009/10/16 15:52 | Me, Myself and I | 트랙백 | 덧글(1)
200.10.12.


그래, 이제부터 하루에 두 잔만 마시자.
아침에 눈뜨자 마자, 그리고 오후에 한 번 더.

아침에 눈뜨자마자 절대로 절대로 한 번만 마셔야 해.
알겠지?

by Dreamer | 2009/10/12 15:53 | Me, Myself and I | 트랙백 | 덧글(2)
2009.10.9.

날씨 너무 좋다.
이 말 밖에는.

by Dreamer | 2009/10/09 11:26 | Me, Myself and I | 트랙백 | 덧글(2)
2009.10.5.

save those feelings.


by Dreamer | 2009/10/05 10:49 | Me, Myself and I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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